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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erry Christmas

 

 

구태여 말 하지 않고도 서로의 마음을 알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좀 더 머리가 덜 여물었을 적에는 그런 상상을 한 적이 있더랬지, 큐는 애꿎은 스푼으로 머그 안을 휘저었다. 빙글빙글, 내용물이 소용돌이치는 것이 마치 최면을 거는 것 같아 괜스레 마음이 더 무거웠다. 내게 화내지 않는다. 그는 그때 벌어진 모든 일에 대해서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는 것을 꺼려했다.

 

얼굴이 알려져 있지 않은 백업요원이 납치되었던 일, 그 백업요원을 장장 3일씩이나 찾아내지 못했던 일, 찾아낸 백업요원이 만신창이였던 일, 급하게 수술을 하고 나와 회복실에서 정신을 차려서 기껏 뱉은 소리가 아, 뿐이었던 일, 아무도 약물에 굳어가던 그의 성대를 신경 쓰지 못했던 일, 수술실에 누워있던 사람이 Q였던 일, Q를 구출하고 수술동의서에 서명을 한 게 본드 본인이었던 일 전부를.

 

“Q, 정신이 들어?”

“아...·”

 

Q는 쇳소리가 뱉어지는 목이 이상해 몇 번이고 가다듬으며 소리를 모아보지만 목구멍이 턱 막히는 기분에 목을 잡고 본드를 올려봤다.

 

“왜, 물줄까?”

 

Q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으며 물 컵 옆에 놓인 티슈를 가리켰다. -큐는 본드의 습관을 알고 있었다.- 본드는 의아한 듯 했지만 얌전히 티슈를 세장 뽑아 Q에게 건넸다. 당신 그거 진짜 낭비인거 알아야 하는데, 하고 싶은 말들을 혀뿌리로 밀어둔 Q는 제 앞으로 가까이 다가온 본드의 앞주머니에서 볼펜을 꺼내들었다. 그리고 반으로 접어 더 푹신해진 티슈 위에 침착하게 글씨를 적어 넣었다.

 

‘목소리가 안 나와요.’

 

*

 

MI6 산하 연계 병원의 백업요원 주치의는 Q의 보호자를 대동한 상태에서 그의 상태에 대해 낙관적인 전망을 내놓았다. 성대의 떨림이 정상 수치에 못 미치더라도 부터 시작된 말은 사정없이 구겨지는 본드의 표정과 더불어 이렇게 끝을 맺었다.

 

“꾸준히 치료하면 호전될 걸세.”

“시기는?”

 

‘응?’, ‘완치 말이요.’ 글쎄, 백발의 주치의는 턱을 매만지며 셈을 헤아렸다. ‘아마, 빠르면 6개월 정도 걸릴 거야.’ Q는 그때 이렇게 생각했다. 내가 몸 움직이기도 힘든데 여기서 문제 일으킬 거면 나가라고 말할 수 없는 게 이렇게도 불편하구나, 라고 말이다.

 

하지만 생각과는 별개로 Q는 저 노인이 천수를 다 하지 못하고 저세상으로 가버리면 어쩌나 하고 심각하게 걱정했다. 본드가 표정 관리를 할 생각도 없이 무서운 눈으로 주치의를 쳐다봤기 때문이었다. 말을 할 수 없는 대신 Q는 손을 뻗었다. 온종일 누워있어 부은 손가락 끝에 까칠하게 튼 체온이 달라붙는다. Q의 손을 느꼈는지 본드는 바로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봤고 Q는 가만히 고개를 가로 저었다. 안돼요. 공기 섞인 파열음이 허공을 날자 주치의가 자신의 말을 정정했다. ‘1년은 걸리겠군.’

 

결과적으로 말하자면 노인이 천수를 누릴 확률은 높아졌고 본드는 아무런 말도, 화조차도, 내지 않았다. 묘하게 풀이 죽은 그의 반응에 Q는 좋게 말하면 놀랐고, 나쁘게 말하면 속이 상했다. 차라리 소리를 질러요. 평소처럼 안아줄 수도, 말을 걸 수도 없어 큐는 애꿎은 본드의 손가락만 만지작거렸다. 때맞춰 빗소리가 들린다.

 

누가 날 납치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참 멍청한 놈들이네. Q는 간신히 뼈를 맞춰놓은 오른손을 보며 얼굴도 잘 기억나지 않는 -어차피 다 죽어서 이제 얼굴 기억할 필요가 없지만- 그들을 동정했다. 팔뼈를 부숴놓으면 후유증으로 고생이라도 할 거라고 생각한 모양이었지만 공교롭게도 큐는 왼손잡이였다. 본드가 도착하기 직전에 오른팔로 내리쳐지던 파이프를 떠올린 Q가 몸을 잘게 떨었다.

 

무섭진 않았다. 사실 무서웠지만 잠을 못자고 덜덜 떨 만큼 무서운 일은 아니었다. 자신이 하는 일은 신변보호를 요청하지 않는 이상 편안하게 노후를 보낼 수 없는 직업이었고, 노후를 맞을 확률이 높은 직업이 아니었다. 다만 시리게 아팠던 팔이 떠오르자 당신도 항상 그렇게 아팠을까 하는 생각에 속으로 미안함을 삭였다. 정갈하지 못한 필기체로 적힌 쪽지를 쥐어보던 Q는 새로 온 간병인과 필담을 나누며 이번에 간 곳에서는 다치지 말았으면, 하고 바랐다.

급하게 수술에 들어간 것에 비해 회복이 빠르고 수술의 경과도 좋아 Q는 치료를 통원으로 변경했다. 치료비는 이미 정산이 끝난 상태였고 애당초 납치된 상태로 바로 입원했기 때문에 챙길 옷도 없었다. 마침 Q가 퇴원하는 날 맞춰 귀국한 본드의 차에 탄 Q는 기시감을 느꼈다.

 

“이쪽 길은 내 집이 아니라 당신 집에 가는 거잖아요.”

“내 집이 안전해. 그리고 의사가 먼지랑 동물털이 안 좋다더라.”

 

‘애들은 머니페니네 집에 맡겨뒀어.’ 이따 사진 보내준다고 하더군, Q는 서운함에 입을 다물었다. 왜 그걸 나랑 상의도 안하고 정해요. 적막이 무겁게 내려앉아 난생 처음으로 그의 곁이 불편했다.

 

*

 

차에서 내려 마음이 허한지 바람이 싸늘한 건지 몸을 떨자 본드는 급하게 스카프를 둘러주며 팔로 허리를 감쌌다. 난방을 틀어두고 나왔는지 집안은 따뜻했고 업체를 불러 청소했는지 집에 먼지도 없었다. 다만 눈에 띄게 달라진 점은 러그를 치우고 집안 곳곳에 놓인 가습기였다. 퇴원할 때도 의사가 건조한 곳이 좋지 않다고 얘기 하긴 했지만 이렇게 까지 많은 가습기는 생각을 못했던지라 Q는 잠시 얼어있었고 본드는 욕실로 들어가 물을 받았다.

 

혼자 씻기 힘들 거라며 부득불 욕실에 같이 들어온 본드는 투박한 손으로 섬세하게 Q를 씻겼다. 어린애 다루듯 깔끔하게도 씻긴 본드가 바닥에 물을 뿌리는 동안 Q는 좋아하는 바스볼로 거품이 가득 차있는 욕조에 들어가 반쯤 젖어든 소매를 쳐다봤다. 거품기를 없앤 본드와 눈이 마주치자 Q는 자기도 모르게 놀라 짧게 딸꾹질을 했다. ‘너 딸꾹질 하면 안 좋은데.’ 본드는 짧게 중얼거리며 빠르게 다가와 큰 손으로 뒷목을 받쳤다. Q는 너무 놀라 눈을 크게 떴고 본드는 쇄골 아래를 쓸어주며 퇴원하기 전에 들었을 주의사항을 읊조렸다. ‘이러다 사레 걸리면 병원가야...’ 물론 그 주의사항은 맞닿은 체온에 온전히 끝맺어지지 못했다.

 

말할 일이 거의 없어 예민해진 입술에 잔뜩 튼 피부가 닿았다. 물에 젖어 차가워진 팔목위에 손을 얹으며 쪼듯이 아랫입술을 부비다 혀를 내어 핥자 목 아래서 나른한 신음이 올라왔다. 그 소리에 살짝 입술을 벌리자 타인의 체온이 입술 안쪽의 여린 살을 훑는다. Q는 눈을 감고 들숨과 날숨이 오가는 것에 집중했다. 혀를 살짝 깨물리자 끙끙거리며 앓는 소리를 내던 Q가 꽉 쥐고 있던 본드의 팔목을 놓고 손을 아래로 내려 까슬하게 닿는 니트를 잡아당기듯 손을 넣어 맨살을 만졌다. 잔뜩 긴장한 근육을 손바닥으로 쓸며 혀를 빨리는 감각에 눈을 가늘게 뜨며 쉰 목소리로 탄성을 뱉자 본드가 급한 손길로 큐의 뒷목을 받치던 손을 떼어 팔을 교차해 니트를 벗었다.

 

맨몸을 보인다고 부끄러워 할 나이는 지났고 간질거리는 연애를 하기엔 지금 보내는 시간이 귀했다. Q가 목을 가다듬으며 울어서 부은 눈을 비비자 뒤늦게 정신을 차린 본드가 급하게 가운을 여미고 나가 뽀송한 수건을 너 댓개 들고 오더니 수건으로 물기를 닦아냈다. 강박적인 손길에 살갗이 쓸려 아팠던 큐가 본드의 팔목을 잡자 그는 미안하다며 연신 조금만, 감기 들까봐 그래. 라는 말을 외웠다.

 

머리까지 꼼꼼하게 말려지고 난 뒤에야 간신히 침대에 누운 Q는 가물가물한 눈을 억지로 들었고 본드는 Q의 이마를 쓸어주며 코까지 이불을 여몄다. ‘자, 한숨 자’ 어제 막 세탁이 끝난 듯 유연제 냄새가 나는 베개에 코를 묻듯 눕자 본드는 Q가 잠에 들 수 있도록 토닥이던 손길을 거뒀다.

 

입원했을 때 2주 만에 해외로 보내놓은 것이 미안했는지 상부에서는 본드를 부르는 일이 없었고 큐가 타자를 칠 만큼 호전됐다는 사실이 들어가자마자 두 시간에 한 번씩 상황을 정리한 메일이 도착했다. 물론 아직은 코딩을 하거나 길게 메일을 보낼 만큼 팔이 좋아지지도 않았고 입으로 직접 하는 말과 성문화된 문서 사이의 괴리가 커 본격적인 업무를 맡기는 일은 없었다. Q는 딱 한번을 제외하고 모든 메일에 확인했습니다, 라고 짧게 답장을 보냈는데 그 딱 한번은 금요일 오후 5시에 온 메일이었다.

 

-오늘은 백업도 종료됐고 해외 팀과도 시차가 크게 차이 나지 않아 모든 상황이 종료되었습니다. 별다른 일이 없으면 이대로 퇴근할 것 같네요. 주말 잘 보내세요. p.s 오전에 코딩이 엉켰는데 보내주신 메일보고 해결 했습니다. 부장님이 말로 지시하셨다면 더 빠르게 끝났을 텐데 글자로만 대화하는 건 참 어렵네요. -

 

본드는 정말 급할 때가 아니면 말을 안 하는 편이 좋겠다고 제안했고 자신도 그 제안에 동의 했었다. 주로 필담이나 텍스트 메시지로 대화하면서 본드는 단 한 번도 이 상황이 불편했던 적이 없었을까? 내 요구사항들이 어렵지는 않았을까? 100자도 채 되지 않는 추신에 심란해진 Q는 본드의 베개에 머리를 대고 누워 자연스럽게 올라오는 코롱 향을 맡으며 그동안 주고받았던 메시지들을 살폈다. 주로 요구하는 문자를 보니 그동안 본드가 알아듣기 어려웠던 단어들도 간간히 들어가 있어 큐는 핸드폰을 내려놓고 본인의 무신경함을 탓하듯 한숨을 쉬었다.

 

내가 뭘 하고 있었더라, Q는 다시 밀려드는 잠과 싸우듯 눈을 감은 채 하루의 일과를 떠올렸다. 일어나서 아침 먹고, 아니 이건 빼자. 날이 추워져서 본드 혼자 장보러 나갔고 메일 와서 확인하다가, 아 메시지보고 잠들었나보네. Q는 늘어지는 정신을 붙잡으며 잠을 깨려고 노력했다. 큰 짐승에게 눌리듯 온몸이 무거워 일어날 생각이 사라져 가는 찰나 문고리가 돌아가는 소리가 들리더니 일정하게 떨어지는 발소리가 들렸다.

 

뭐지, 본드인가? Q는 쏟아지는 잠 속에서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는 상대를 추측하려 애썼고 인중으로 손가락이 붙자 머릿속에 의문증이 들었지만 다른 손을 턱 아래에 대는 것을 느끼고 정신이 번쩍 들었다. 맥을 왜 짚지?, 본드의 자리에 누워서 자던 것 까지 기억했던 큐는 의자 위에 걸터앉는 소리를 듣고 신경을 곤두세웠다. 수십 수백 번을 잡고 만졌던 손가락을 모를 리 없는 Q였지만 지금 행동들은 본드가 한다고 생각하기엔 너무나도 생소했다. 큐는 일어나고 싶어서 손가락을 움츠렸고 본드는 가만히 손가락을 펴주며 멍이 빠지기 시작하는 오른쪽 팔목 위에 이마를 가져다 댔다. 그것까지 느낀 Q는 더 이상 자는 척 할 수 없어 팔을 크게 움찔이며 눈을 번쩍 떴다. 본드는 빠르게 이마를 떼어내더니 방금 들어온 얼굴을 하며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잘 잤나? 저녁먹지, 하며 일어섰고 Q는 어안이 벙벙해 본드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Q는 그때 일을 함구했고 본드는 돌아오는 월요일에 임무를 나갔다. ‘당신 나한테 미안해해요?’ 유난히 무거워 보이는 어깨에 짐을 얹을 수가 없던 Q는 잘 다녀오라며 본드를 한 번 꼭 껴안고서야 마주 안은 손이 그동안 계속해서 떨리고 있음을 깨달았다.

 

*

 

구태여 말을 하지 않아도 마음을 전할 수 있다면 얼마나 편할까, 오해할 일도 없고 싸울 일도 없고, 하물며 말재주라도 좋아서 안심할 수 있게 도와줄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아쉽게도 그런 쪽에는 재주가 없다. Q는 머그잔을 휘저으며 빨려들 듯 한 소용돌이를 응시했다. 브랜치는 본드의 미션내용에 대한 상세한 언급을 꺼렸고 Q는 지금 본드가 모스크바에 있다는 것만 안다.

 

성대가 잘 움직이지 않아 목이 쉬기 쉽고 사레가 들릴까봐 한동안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말을 하지 않았던 건데 본드는 이상하리만치 자신이 말하는 것을 꺼렸다. 그 이유를 몰라 과도하게 걱정한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그쳤지만 이제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Q는 막연한 과거의 일을 떠올렸다. 팔에 급하게 부목을 대고 뭘 삼켰는지 알 수가 없어 억지로 토해내게 하던 것도 그였고 수술동의서에 사인한 것도 그였다. 죄책감. 세상에 형태 없이 가장 무거운 것이 본드를 짓누르고 있었다.

 

본드가 없는 동안에도 꾸준하게 치료를 받던 Q는 치료를 하다 자신의 목소리를 듣는 과정에서 불현 듯 본드를 겁먹게 하지 않으면서도 대화를 할 수단을 생각해내고 메일을 남겼다. 그날 큐브랜치는 느닷없는 쿼터마스터의 요청에 비상이 걸렸다. ‘아니 그걸 지금 준비해 달라 그러면 어떡해?’, ‘저야 모르죠.’

 

한 달여에 걸쳐 큐가 준비를 끝내갈 무렵 브랜치에서 소식을 전해왔다. -새해가 되기 전에는 귀국하실 것 같습니다. p.s 이번에는 무기 회수하셨어요. - 드물게 입 꼬리를 끌어올려 웃은 Q는 답장을 보낸 뒤에 난장인 집을 정리했다. ‘고마워요 귀국일 잡히면 알려줘요,’

 

*

 

본드는 오후 비행기를 타고 돌아와 테너를 통해 보고를 올린 뒤에 집으로 차를 몰았다. 불이 꺼진 거실을 보고 혹시 몰라 반납하지 않은 총에 손가락을 건 본드가 바닥에 은은한 불빛이 감도는 침실로 발을 옮겼다. 반쯤 열린 문 사이로 눈을 가져다 대자 문과 등을 돌리고 앉은 Q가 보였다. 그대로 사라질까 겁이나 문을 열어젖히자 Q가 고개를 돌렸다.

 

“Q."

 

왔어요? 다친 곳은요? 평소와 달리 안부도 묻지 않는 Q가 낯설어 본드가 잠시 주춤하자 Q가 입을 열었다.

 

“본드.”

 

내용은 둘째 치고 들려온 목소리가 예전과 같이 맑아서 잠시 당황한 본드가 망설이면서 Q의 곁으로 다가갔다. ‘목은 괜찮은 거야? 끄트머리에 앉아 Q의 머리를 넘겨주자 그가 가만히 깍지를 끼며 손을 잡는다. 당신 잘못이 아니에요. 응?

 

“당신 잘못이 아니라구요.”

 

당신은 그때 할 수 있는 모든 걸 다 했는걸, 본드는 손을 빼고 싶은지 움츠렸고 그동안 잘 쉬면서 골절이 나은 Q는 본드의 손을 꽉 쥐어 잡았다. 수천수만의 말이 떠오르는 가운데 본드는 고르고 골라 물었다. 목은?, 이제 다 나은 거야? 큐는 가만히 고개를 가로 저었다. 아뇨,

 

“백업할 때랑 무기 개발할 때 이것저것 녹음하거든요. 당신 나가있는 동안 녹음된 파일들을 손봐서 단어와 조사를 골라냈어요. 목소리 톤을 좀 손보고 갈아낸 것도 많았지만 어느 정도는 예전 목소리로 말할 수 있게 도와주는 도구에요.”

 

당황한 건지 말을 잊지 못하는 본드에게 큐는 덧붙였다. ‘노느니 뭐해요. 그냥 만들었어요. 잔뜩 쉰 목소리보단 이러는 편이 당신이 듣기에도 나을 것 같았고요. 아, 대신 녹음되지 않은 단어는 예전 목소리 그대로 출력돼요.’

 

“왜 내가 쉰 목소리를 안 듣고 싶어 한다고 생각했는데?”

 

제임스. 난 당신 애인이에요. 내가 당신도 모를까 봐요? Q는 쉰 목소리가 최대한 덜 출력되게 말을 고르며 아이를 어르는 눈으로 본드를 바라보며 말했다. 미안해하지 말아요. 당신이 나 때문에 속상한건 바라지 않아요.

 

길게 내려앉은 속눈썹을 깜빡이던 본드가 Q를 껴안고 말했다. 사랑한다고 해줘. 안돼요. 왜? 그건 녹음이 안 되어있단 말이에요. 상관없어. 네? 상관없다고. 그냥, 그냥 해줘. 단단한 품안에 갇혀 잠깐 동안 바르작대던 Q는 조금씩 맑은 기가 돌아오는 목소리로 속삭였다.

 

“사랑해요.”

 

한참을 껴안은 뒤에야 어설프게 꾸며진 크리스마스트리가 본드의 눈에 들어왔다. '조금 늦었는데 메리크리스마스 Q.' 낮은 목소리가 기분 좋게 고막을 울리고 흩어진다. Q는 뺨을 목덜미에 대고 속삭였다. 메리크리스마스 본드. 공기가 흩어지듯 창밖으로 눈이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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